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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노트

축구 전술(포메이션) 정복하기 1탄 - 전술 축구의 시작과 역사

<축구 전술(포메이션) 정복하기 1탄 - 전술 축구의 시작과 역사>

 

 

안녕하세요, 도울입니다.

 

앞서 축구의 포지션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를 했다면
그 내용들을 접목시켜 축구의 전술에 대해 공부해보는 건 어떨까요?

수비수의 유형과 역할
미드필더의 유형과 역할
공격수의 유형과 역할

오늘은 제일 기본이 되는 전술적인 지식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전술 축구의 시작과 현대 축구 이전의 전술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 같이 열심히 공부해보자고요!


 

영국에서 FA가 출범하고 세계 각지로 축구가 보급된 이후의 축구는 공격 위주의 성향을 띠었습니다.

현대 축구에서 제일 중요시되는 패스를 통한 팀 플레이는
전혀 볼 수가 없었고, 화려한 드리블을 앞세운 투박하고 거친 플레이만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는 공격력을 극대화한 2-3-5, 즉 역피라미드 전술을 사용했고,
당시의 축구는 지금의 럭비와 같이
거친 스포츠였다고 합니다.

 

역피라미드 전술

 

 

지금 생각해보면 가능한가 싶은 이 전술은 1930년대까지 거의 유일한 전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고집되었던 이 전술이 변화의 바람을 맞게 되었는데요.

바로 오프사이드의 탄생 때문이었습니다.

최초의 오프사이드 규칙은 '골키퍼와 수비수를 포함해 총 3명의 상대 선수가 앞에 위치해있어야 온사이드이다.'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래서 골키퍼와 수비수가 한 명씩만 앞에 있으면 오프사이드가 되었기 때문에 당시 공격수들은 오프사이드 상황을 피하기가 힘들었는데요.

그로 인해 공격 축구가 힘을 잃자 오프사이드 규칙을 '총 2명의 상대 선수가 앞에 위치해있어야 한다.'로 개정했습니다.

이러한 규칙의 변화로 생겨난 전술이 바로
'WM 전술'입니다.

오프사이드 규칙의 개정으로 공격수가 수비진을 쉽게 공략하게 되자 당시 아스날의 허버트 채프먼 감독은 하프백 한 명을 수비진으로 내려 수비를 보강하는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자연스레 중원 싸움이 약해지자 5명의 공격수 중 두 명을 중원으로 내리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좌우 측면으로 간격이 벌어지면서 최종적인 WM 전술(3-2-2-3 포메이션)로 정립됩니다.

 

WM 전술

 

 



하지만 헝가리의 구스파트 세베스 감독은 진작부터 WM 전술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 전술의 기본 원리는 상대 선수 1명을 우리 선수 1명이 맡아 절대적인 역할 분담을 이루어낸다는 것이었는데 축구는 그렇게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베스 감독은 1:1에서 2:1, 3:1로 수적 우위를 둔 전술을 연구하면서 세계 최초로 'MM 전술'을 착안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공격진에 '포지션 체인지'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여 공격력을 극대화했습니다.

세베스 체제에서의 센터 포워드는 중원으로 내려가거나 측면 깊숙이 빠져 상대 센터백을 유인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빈 공간을 인사이드 포워드나 윙포워드가 공략하는 것이었죠.

당시 페렌츠 푸스카스를 앞세운 헝가리의 '매직 마자스'는 이 전술을 통해 WM 전술의 잉글랜드를 크게 격파하였고,
경기를 보러 온 브라질 지도자들이 이 전술을 심도 깊게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렌체 푸스카스 (출처: Just Football)

 

 

결국 브라질에서도 전술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고,
페올라 감독이 MM 전술을 수비적으로 발전시킨 4-2-4 포메이션을 완성시켰습니다.


 

MM 전술

 

 

브라질은 이 전술로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하게 되었고,
벤피카의 벨라 구트만 감독도 이 전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가속화시켜 챔피언스 컵에서 연달아 우승했습니다.


 

브라질 대표팀과 벤피카의 영향으로 4-2-4 전술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나, '막아서 이기는' 축구를 해왔던 이탈리아는 공격 축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비 축구를 연구했습니다.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은 4명의 공격수를 4명의 수비수로 방어한다는 기초적인 원리에 더해,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을 뜻하는 '리베로'를 수비진 뒤에 위치시켜 수비적으로 수적 우위를 가져오는 전술을 고안했습니다.

WM 전술의 1:1 전담은 상대 공격의 실력이 우리 수비보다 열등하다는 전제 하에 성공하는 원리였기 때문에, 상대 공격이 기술적으로 우세하다면 최후방에 위치한 리베로가 커버하게끔 한 것이었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천재적인 생각이지 않나요?

1-4-3-2(5-3-2) 혹은 1-4-4-1(5-4-1) 포메이션을 필두로 한 에레라 감독의 인테르는 유럽 챔피언스 컵과 유로에서 우승을 달성하였고, 당시 언론들은 이 전술에 빗장이라는 뜻의 '카테나치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카테나치오

 

 


 

하지만 빛을 발했던 카테나치오를 너도나도 기용하면서 골이 들어가지 않는 수비 축구만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의 리누스 미헬스 감독은 브라질 축구의 대인방어와 헝가리 축구의 포지션 체인지를 접목시켜 새로운 전술을 탄생시켰습니다.

공을 빼앗긴 공격수가 상대 수비수를 압박하여 상대 문전 가까이에서 공격을 시작하고, 빌드업 시 수비수도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전원 공격, 전원 수비' 전술, 즉 '토탈 풋볼'의 형태가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미헬스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요한 크루이프도 감독이 되고 이 토탈 풋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토탈 풋볼은 공격수가 앞에서 수비하고, 수비수가 빌드업을 시작하는 현대 축구의 거의 모든 전술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되며 축구 역사상 가장 큰 혁명이라고 얘기합니다.


 

 

오늘 공부한 여러 감독들을 보니 진짜 최고가 되는 방법은 끊임없는 노력과 창의성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토탈 풋볼 이후 현대 축구에 들어선 여러 가지 전술 형태들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내용을 한꺼번에 공부하다 보니 아직 완벽하게는 숙지되지 않은 것 같네요ㅜ

더더 공부해서 축구 전문가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도울이었습니다.